내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작은 포구 대진이란 마을을 가로 지르는 기찻길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졌으나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우리 동리에 열차가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그 땐 증기기관차였다. 학교까지는 약 2km정도의 거리이지만 많은 학생들은 철로의 침목과 철로를 밟고 가면서 많은 놀이를 하였다. 학교에 갈 시간이면 기차는 오지 않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학교를 가는데 이때 항상 멈췄다 가는 곳이 망상역이었다. 자동차도로에는 흙먼지가 많이 나서 우리들은 기찻길을 이용하여 등하교를 하면서 가장 멋진 역과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역무원이 보기 위해서였다. 상하급생 모두 다음에 크면 모두 역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였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제복에 모자를 쓰고 나오는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기차가 역에 가까이 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바퀴사이로 내품는 흰 증기와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품어내며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에 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보며 탄성을 지르곤 하였다. 기차가 지나간 후에는 모두 기찻길에 올라 철로에 귀를 대고 기차가 어디까지 갔을까 한참동안 지나간 거리를 점치곤 하였다. 어느 땐가 수증기도 검은 연기도 품어내지 않는 기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기적소리는 더 요란하고 달리는 속도도 더 빨랐다. 그때부터 우리는 등하교 길을 자동차 길로 다니기 시작하였고 망상역의 개찰구에 서서 요란하게 괭음을 울리는 디젤기관차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동심의 세계는 성장이란 세월에 묻혀 함께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문경가은역]
과거 모습의 망상역을 뒤로하고 언제부턴가 문화재청에서 근대유산 중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접하게 되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 이를 알리고 정화하는 일을 해온지 벌써 13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또 다른 문화유산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하였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2006년 2월 3일 울산의 남창역사며, 2007년 2월 1일 안동역의 급수탑을 2007년 3월 2일 영천역의 급수탑을 답사하였다. 또 다시 2007년 3월 21일 잔득 흐린 날씨에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는데 문경가은역을 찾았다. 텅 비어있는 역 대합실로 들어가니 빈의자에 매표소에는 온천 포스터가 붙어 있고 사무실은 텅텅비어 있었다. 가은역은 1956년9월15일 석탄공사 은성광업소의 명칭에 따라 은성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던 곳이다. 역 구내의 철로는 주인을 잃어버인채 녹슬고 있었고 철로 사이사이 공간은 동리 주민들이 밭으로 개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2007년 5월30일에는 충북 영동군에 있는 추풍령역 급수탑과 심천역사를 답사하였다.
[추풍령역 급수탑]
추풍령역의 급수탑은 영천역이나 안동역의 급수탑과 다른 사각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로 표준화된 급수탑의 유형이 정해지기 이전인 1939년 건축된 과도기적 급수탑이라고 한다. 급수탑 내부에는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펌프와 급수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인 연못 및 배관시설 등 급수시설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였다. 심천역은 1905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1920년에 역사가 신축되었으나 1934년 복선공사에 의하여 이전 신축된 역으로, 역사는 ‘一’자형 평면형태를 하고 대합실 출입구에 박공지붕을 틀어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합실출입구에는 차양지붕을 덧 달아낸 형태로 본채의 지붕과 단차를 두고 있어 입체감을 주며 또한 대합실 내는 3면에 장의자를 설치하여 농촌 풍경을 옮겨 놓은 듯 소박함을 느끼게 하였다.
5곳의 역사를 찾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애환을 간직한 역사는 오늘도 수많은 물자와 사람을 태우고 내리게 하는 공간의 끄나풀 역할을 쉬지 않고 하는 것이 나의 오랜 추억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산역: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과 내린 사람들]
1980년도 9월부터 경의선 열차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신촌역에서 가좌역에서 경의선열차에 몸을 싣고 백마역으로 일산역으로 향하면서 차안에서 들리는 통기타 소리에 잔잔히 흐르는 젊은이들의 노래소리에 디젤기관차의 소리도 잊어버린채 탈칵탈칵 레일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합창하는 그 광경은 젊은이의 낙원인듯 하였다. 백마역에 열차가 도착하면 우르르 내리는 젊은이들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몇몇의 카페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하면 마지막 열차가 오기까지 이어졌었다. 백마역에서 젊은이들이 내리면 객실에는 일산으로 문산으로 향하는 통학생과 새벽 열차에 몸과 농산물을 싣고 신촌이나 모래내시장에서 농산물을 팔고 돌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주머니 아저씨가 남는다. 다시 일산역에 도착하면 객실이 텅텅 비다시피 하여 문산으로 떠나는 경의선 완행열차가 설렁하게 보였다.
[일산역 대합실]
1981년 1월에 일산에 살고 있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부터는 일산역과 매우 친한 친구가 되다시피 하였다. 매주 주말이면 신촌역에서나 가좌역에서 경의선열차에 몸을 싣고 일산역으로 향했다. 둘이서 천천히 달리는 열차의 객석에 앉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녘을 보면서 사계절의 풍경을 맛보곤 하였다. 강매역부터 일산역까지 넓은 들판에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겨울 모습이 쓸쓸하고 스산한 느낌의 추억을 덮어놓았고 봄철이 되면 들에는 수많은 농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 씨앗를 뿌려 파란 새싹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여름이면 무성히 자란 들녘의 많은 농작물이 그 모양새를 갖추었고 가을이면 곳곳에서 추수하는 모습이 들녘을 가득 메웠었다. 일산신도시가 탄생되기 전에는 일산역 앞은 낮은 산이 있었고 그 사이로 농촌의 모습이 보였던 곳인데 지금은 산은 없어지고 그 곳에 높은 아파트가 가로 막고 있다. 몇 량의 객차를 단 열차가 일산역 홈에 들어서면 객차의 출입문을 차례대로 내리는 일산 사람들은 작은 역의 출구를 통해 빠져 나가 본래의 삶의 터전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나는 한 손엔 큰아이의 손을 잡고 한 손엔 가방을 들고, 아내는 둘째 아이를 안고 출구를 빠져 나오면 이제 다 왔구나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다시 일산역을 통해 가좌역으로 가기 위해 시간 맞추어 나오면 학생들이 교복차림에 가방과 각종 보따리 하나씩 들고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시간표에는 한 시간마다 운행되는 시간표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며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기적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개찰구에서 역무원이 검표를 시작한다. 꾹 찍어주면 동그란 구멍이 하나 생긴다. 이것이 검표를 하였다는 표시이다.
일산역은 1933년에 지어져 업무를 개시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역사는 모두 새롭게 단장되었는데 일산역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으로 그 희소가치를 지닌 역사이다. 일제 강점기 때
는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된 소중한 젊은이와 6.25라는 전생 속에 수많은 피난민을 태우고 덜렸던 일산역은 지금도 출발역이 되어 북녘땅 신의주까지 달리고 싶은 열차을 기다리고 있는 소망의 역으로 남아 있다.
[일산역사]
일산역의 지붕은 일자형 평면위에 십자형의 삼각형 짜임지붕을 올려놓는 형태이며 정면에서 보이는 삼각형 형태의 박공부위는 비교적 폭이 넓은 반면에 높이는 낮다. 지금은 초라할 만큼 왜소해 보이지만 이것 하나라도 새로운 형태의 역사로 탈바꿈 된다면 우리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등록문화재 제294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어 있어 이 고장의 역사유물로 오래 간직될 것으로 사료된다. 아직도 남아 있는 수신호 등불과 열차 선로 교체를 위해 당겼다 밀었다 하는 기기, 내가 앉았던 장의자, 출입하던 개찰구, 홈으로 들어가는 침목길 그리고 작은 역사 모두 그대로 남겨두어 28년 전의 과거를 체험하는 장소로 변화되어 가는 일산역을 뒤로하면서,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뛰면서 “소라야 빨리 뛰어! 이 차 놓치면 한 시간 기다려야 해” 라는 그 소리가 일산역에 오면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매년 2차례씩 다 큰 아이들과 가좌역에서 열차를 타고 일산역까지 가면서 오면서 옛 추억담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간이역으로 탈바꿈되는 일산역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다시 들려오는 기적소리에 귀 기울이는 증기기관차의 옛 모습을 기다리면서. -끝-
청량산 자락에서 하룻밤을 이야기하며(농암종택) (0) | 2007.12.20 |
---|---|
어달산봉수대의 횃불을 기다리며[1문화재1지킴이 보고서] (0) | 2007.12.09 |
문경새재 넘기 전에 만난 조선의 선비 (0) | 2007.11.15 |
봉화땅 선비의 뜻에 송이전골 먹어보니 (0) | 2007.10.26 |
정진해의 가을 나들이 (0) | 2007.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