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8일 울릉도에서 이틀밤을 보냈다. 오늘 묵호항으로 가는 날이다. 오후 5시에 여객선이 출항하기에 그 시간 동안 남은 문화재 한 곳을 찾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가장 어려운 코스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태하동 솔송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군락지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다시 울릉군청 문화재담장 공무원에게 전화를 하여 그 위치를 문의하였드니 그곳은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매우 숲이 우거져 있어 울릉도 사람도 그 곳을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큰 일이다. 여기서 포기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도전을 할 것인가 많이 생각을 하였다. 육지에서는 이 보다 더 어려운 곳의 문화재를 찾아 갔었건만 이 곳에는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곳이며, 또한 이 지역 일대를 알 수 없었다. 지도를 펴 놓고 아무리 위치를 알려고 하여도 가지고 간도간 변변치 못해서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계곡이 깊어 울창한 나무 사이로 갔다가는 길을 잃고 헤매지나 않나 많은 걱정이 되었다. 이곳의 마지막 문화재를 답사하고 가면은 이젠 울릉도의 문화재는 모두 답사하게 된 것이다. 한참 생각 끝에 가기로 하였다. 이틀간 이용하였던 택시를 불렀다. 혹시 태하동에 있는 솔송나무, 섬잣나무군락지를 알고 있느냐고 하였드니 처음 듣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면 태하령을 알고 있느냐고 하였드니 태하령을 안다고 하였다. 그러면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드니 태하령으로 차를 돌려 입구에 도착하니 태풍으로 훼손된 길을 아직도 입구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차가 올라 갈 수없다고 공사관계자가 막았다. 다시 차를 돌려 반대편으로 가니 좁은 길에 차는 언제 다녔는지 썩은 낙엽이 가득 차 있었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니 감시원이 이 곳에는 차가 다닐 수 없고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고 하였다. 차에서 내려 감시원에게 문화재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군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빼곡히 우거진 곳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도로이어서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날 정도의 위험한 곳이었다. 감시원에게 이 곳으로 넘어 오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간다고 하니 처음에는 갈 수 없다고 하였으나 끝까지 답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허락을 하였다. 경사진 길을 오르니 매우 힘이 들었다. 감시원 초소에서 약 300m정도 가니 철책으로 울타리를 하여 놓았다. 그리고 문화재안내판이 철책 울타리 속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부터 계속 이어진 솔송나무와 섬잣나무, 너도밤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었다. 도로의 정상에 올라서니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우 시원하였다. 앉아서 커피 한잔을 하고 땀을 말린 다음 또 다시 비탈길로 내려갔다. 아름들이 솔송나무와 섬잣나무가 빼곡히 서 있었다. 비탈길은 매우 미끄러웠다. 무너진 길을 따라 가면서 비탈길에 돋아난 야생초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 본 야생초나 야생화를 보면 다가가 카메라에 담았다.
이곳의 군락지에 자라는 솔송나무와 섬잣나무는 4계절 잎이 푸른데 반하여, 너도밤나무는 크고 넓은 잎이 봄에 돋았다가 가을에 떨어진다고 한다. 솔송나무, 섬잣나무 그리고 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는 나지 않고 있어서 특이하다고 한다. 그런데 솔송나무와 섬잣나무는 일본에는 자라고 있는 수종이고 너도밤나무만 하더라도 울릉도의 너도밤나무와 흡사한 것이 일본에서도 자란다고 한다. 일본의 온대림 대표 수종이 너도밤나무이기 때문에 너도밤나무대라 말하고 북반구의 온대에는 너도밤나무가 나는데, 우리나라 반도부에는 없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 한다. 울릉도 태하동에만 분포한 특이한 성상을 보여주는 위 3수종이 모여서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학술상으로 무척 귀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는 이외에도 섬쥐똥나무, 털고로쇠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제 이곳의 군락지도 모두 답사하고 한창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지역을 지나니 우리를 태우곤 온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봉래폭포로 가기로 하였다.
차는 봉래폭포 주차장까지 우리를 태워주고 가 버렸다. 이곳에서 봉래폭포까지는 약 15분정도 걸어서 가야되는 거리이다. 철철 내려오는 계곡을 벗삼아 걸어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끝이 없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다 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원한 폭포수에 시원한 바람을 벗삼아 30여분 동안 이곳에서 쉬었다. 그리고 배속에서 신호가 왔다. 아침에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모두 먹어야 된다고 하기에 있는 밥과 반찬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걸어서 저동항까지 가기로 하고 내려왔다. 5월의 햇볕은 매우 뜨거웠다. 여름 모자를 섰건만 이마와 목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수건으로 열심히 닦아 내었다.
저동항에 도착하니 발이 아파왔다. 이곳에 왔으니 쇠주라도 한잔 하자고 하였다. 쇠주 한병은 팔아도 한잔은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두부가에 아주머니들이 차려 놓은 싱싱한 해삼으로 쇠주 3잔을 마시고 저동 방파제에서 바닷바람으로 술기운을 모두 날려 버렸다.
여객선이 묵호로 떠나는 시간이 2시간 남아 있었다. 저동에서 도동 해안도로를 가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산 등성이를 올라가니 행남등대가 보였다. 행남등대 입구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눈 아래로 보이는 행남등대가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매우 아름다웠다.
한참을 내려 오니 바닷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해삼과 소라집이 있었다. 시간은 흘러 5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도동항까지 가는 시간과 도동항에서 숙소까지 갔다 오는 시간을 생각하니 넉넉한 시간이 아니였다. 뛰기 시작하였다.
좁은 해안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다렸으나 항상 그 자리에 있는듯 하였다. 행안길이 꼬불꼬불하면서 오르락 내르락 하면서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바로 도동항에 가 있으라 하고 뛰었다. 이렇게 달려본 것은 몇 년전 겨울에 경남 가야읍에 있는 산성을 찾아 갔을 때 산돼지를 만나 줄행낭 하든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땐 죽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부모돼지와 새끼돼지가 경주하듯 달려오는데 그래도 살아나서 또 다시 그곳을 찾아 산성을 답사하고 온 기억이 생각났다.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려내렸다.
도동항에서 다시 숙소로 달렸다. 마침 숙소로 가니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큰일 난 듯 시간이 다 되었는데 우리가 나타나지 않아 불안해 하고 있었다. 배낭을 지고 하고 도동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여객선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또 다시 울릉도에 오는 그날을 기약하면서....울릉도는 점점 희미하게 나의 눈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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