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답사기) 산막이옛길 주점에서 가양주 한 잔으로

알리미마당/ 답사·탐방 안내방

by 국보와 보물 2023. 11. 16. 18:15

본문

시인.수필가 정진해

산막이옛길 안내문 석

고개를 넘어 호수가 있는 곳을 찾아 걷는다. 비탈진 길에 높이와 넓이가 일정한 계단식 판매소에서 주인장은 소리쳐 외친다. “갓 따온 콜라비 있어요!” 괴산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이 점포마다 다른 농산물이 진열되어 소비자를 기다린다. 참 좋은 풍경이다. 멋지게 차려입는 점원도 아니고, 소리쳐 외치는 목소리도 아니다. 그저 계절에 맞는 옷에, 적당히 들릴 수 있는 호객 소리가 전부이다. 고개를 돌려 눈빛만 마주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도 흥정하려 하지 않는다. 가게 주인은 알고 있다. 산막이옛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눈여겨 찍어 놓은 물건의 흥정은 되돌아오는 그 길에서 이뤄진다.

고개에 올라섰다. 가을의 정취는 벌써 끝 순을 밟고 있다. “, 빨리 와, 여기서 하나 찍자!” 앞서가던 동생들이 산막이옛길 표지석 앞에서 이곳을 찾은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남기려 한다. “적당히 앉아!” 그리고 기념이 될 수 있도록 한 컷을 촬영하였다. 오늘 산막이옛길을 걷는 동안 가장 높은 고갯마루는 산막이옛길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있다.

 

유람선은 산막이 마을로 오가며 주변의 숨어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발아래에 담아놓은 호수는 잔잔한 늦가을 바람에 세월의 수를 놓고 있다. 멀리서 물살을 가르고 머리에 무녀의 고깔에 꽃은 오색 깃발을 꽂은 여객선이 오고 있다. 매표해야 탈 수 있는 여객선이다. 창구를 찾아 매표하였지만, 이곳에서 경로는 70세라고 하여 씁쓸하게 꺼냈던 우대증이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여객선은 선착장에 도착하면서 짧은 뱃고동을 울린다. 하선하고 상선하여 오르니 깃발을 단 여객선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기계음은 산막이를 메아리치며 물살을 가른다. 가을바람은 옷깃을 여민 만큼 쌀쌀하지 않지만, 멀리서 날려 보낸 낙엽 한 장을 띄울 만큼의 힘을 떠받치며 지나간다. 높은 좌우 앞뒤의 산에는 벌써 잎을 모두 떨군 나무도 있지만, 초록색을 그대로 유지한 나무들도 있다. 숲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데 옛 선비들이 다니는 길에 현대판 산길이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계절마다 숲길을 걷는 발자취는 조금씩 다르고 요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오늘 수요일은 한가하게 보인다.

여객선은 한 번의 뱃고동으로 산막이 마을 선착장에 도착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만큼의 수만큼도 되지 않는다. 여객선은 뒤로 미끄러지며 다시 뱃머리를 상류로 향해 미끄러진다. 눈이 닿은 산 위의 정자는 텅 비어 있다. 손을 흔들어 수려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 정자는 지나가는 여객선만 바라보고 있다. 가을의 숲에 어우러져 있어도 나의 마음을 끌어들일 만큼 그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옛 선비가 저 정자에 앉아 한지 위에 어떤 시를 남겼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는 짧은 시간도 할애했다.

 

산등성이의 외로운 정자각

물 위에 남은 갈대의 흔적들은 성벽을 쌓은 듯 호수의 경계를 만들고, 버드나무 치렁치렁 엮은 가지는 물새들의 쉼터로 정오의 시간을 엮어간다. 삼신암에서 흔들어 주는 어느 총각의 흔들림의 몸은 물 위로 나는 새들의 군무와도 같아 보인다. 팔을 높이 든 반가움의 신호로 흔들어 주어도 선상에 또 다른 어여쁜 여인과의 교신을 깜빡 잊고 있다. 선상 난간에 기대 자연의 짙은 가을 풍경을 담는 할아버지의 흔들림 없는 몸짓은 곧 색소폰의 고상한 음악에 맞춰지기를 기대해 본다.

물살은 산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며 뒤따라 짙은 가을하늘을 밀쳐내고 또 밀쳐낸다. 지네 발처럼 엮는 매단다리는 뱃속까지 보여주며 여객선을 지나게 한다. 벳고동소리는 이제 다 왔으니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한다. 멀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물 위의 여행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선착장의 작은 풍경은 어느 시인의 가을 편지를 전해 주는 듯하다.

 

멀리 보이는 수월정

가을에는 너에게 낙엽을 모아 손 편지를 쓰고 싶다. 주렁주렁 열린 빨간 사과 알 같은 가벼운 손 글씨로 네 이마에 흘렸던 여름날의 땀자국을 지워주고 싶다. 갓 따온 말랑말랑 홍시처럼 달콤한 글씨체로 이제 빈 벤치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장문의 이야기로 고맙다고 가을 편지를 접어 호수 위로 날리고 싶다. 우리는 한치의 여유도 없이 매단 다리로 올랐다. 좌우가 꼭 같은 교각에 지네발이 굵은 외어이를 잡고 매달린 다리 위로 두 팔을 벌렸다. 다리의 생김새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다리는 건너기 위해 놓았다. 다만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다리이고, 이 다리에 오르면 먼지라도 남아 있는 옷자락도 모두 탈탈 털어 날려 보낸다. 가을을 날려 보내려고 다리를 건너고 있다. 모두 입을 크게 열어 맑고 맑은 바람을 입안에 가득 담고 삼키고 뱉어낸다.

누군가 두 팔을 벌려 반갑다며 손을 흔들어 준다. 감사합니다!

여객선에서 잔잔한 방송이 귓전을 때린다. 신분증을 놓고 간 홍 아무개를 찾고 있었다. 가던 길을 뒤돌아 다시 매단 다리를 건넌다. 누구는 한번 건너는 것으로 끝이지만, 누구는 한 번 더 건넌다. 불공평이 공평으로 변하고, 공평이 불공평으로 변화되는 시간이다. 다리 저 건너의 높은 산은 교각에 걸려 있고, 넓은 호수의 물결은 다리 난간에 걸려 있다. 다리 앞 빈 의자에 앉아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60세의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색소폰 소리는 아직도 호구의 물결처럼 리듬을 타지 않고 숨어 있는 시간이다.

 

구름다리에서

숲길을 걷고 있다. 나무에서 이탈한 낙엽이 쌓여 있는 길이다. 나무는 옷을 모두 벗었지만, 낙엽은 조용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양반 소리를 듣지 못해도 낙엽은 양반을 즐겁게 해 준다. 옛 선비가 이사할 때 두 가지의 나무 종자를 챙겨 갔다고 한다. 첫 번째가 회화나무 종자인데, 이것은 이 나무의 가지 뻗음이 단아하고 품위가 있어 선비의 절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회화나무는 행의 나무라 했고 중국에서는 출세의 나무, 일본에서는 장수의 나무라 하여 귀한 나무라 했다. 우리가 걷는 숲길에는 회화나무가 없다. 수월정이 가까워지면 회화나무 한그루쯤 있을 만도 하다.

 

많은 사람이 산막이옛길을 걸었다는 표시

옛 선비들은 소나무를 천자제후의 나무로, 모감주나무를 대부의 나무, 회화나무는 선비의 나무라 불렀다. 선비들이 두 번째 챙긴 나무 쉬나무 열매이다. 선비가 이 나무 씨앗을 가져간 이유는 다른 나무보다 열매에서 기름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은 선비가 오랫동안 불을 밝혀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쉬나무 열매 기름은 그을음이 거의 없고, 불빛이 밝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낙엽이 가지에 남길 만큼 따뜻한 온기가 느끼는 계절이 아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를 구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무튼 우리가 걷는 산막이 옛길에는 회화나무와 쉬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주로 소나무가 많은 숲길이다.

 

해와 달, 별신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삼신바위에서

삼신 바위 앞에 도착하였다. 여객선상에서 손을 흔들던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3개의 바위가 서 있다. 경치가 빼어나고 강물이 빠르게 흘러 살여울이라고 부르던 곳에 삼신인 해신과 달신, 별신이 내려와 목욕을 즐기다 날이 밝아 승천하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과 아기를 갖지 못한 아녀자가 이곳에 와서 정성껏 치성을 올렸다고 전하는 바위이다. 바위 옆의 2그루 3가지가 목석이 되어 삼신 바위와 함께 전설 속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소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여객선

산막이마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있다. 물 위의 여객선은 솔가지 사이로 숨바꼭질한다. 소나무는 강물을 향해 긴 팔을 뻗었다. 어느 것이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만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경지수는 소나무를 물 그림만 잡으려 하고 산천은 소나무를 더 자라게 하여 영영 잡을 수 없도록 한다. 물과 나무의 관계이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비치는 물과 산, 그리고 파란 하늘은 우리의 가을 길을 더욱 아름다움으로 포장된다. 먼 걸음 앞에는 갈대가 손을 흔들고, 아직 못다 익은 가을 씨앗들이 매달려 바람에 춤을 추며 여물고 있다. 마른 풀잎 사이로 띄엄띄엄 굴뚝 없는 집들이 보인다.

노수신적소(수월정) 오르는 돌계단

 

그 앞에 노수신적소(수월정)’라는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킨다. 층층 계단이 저 높은 곳까지 이어져 있고 계단마다 솔잎과 은행나무에 떨어진 낙엽이 가득 쌓여 있다. 살며시 지르밟으면 폭신한 느낌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느껴진다. 한 계단에서 형제들을 생각하고 두 번째 계단에서 늦가을 하늘을 보고, 세 번째 계단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네 번째 계단에서 외롭게 남은 빨간 열매를 보고, 다섯째 계단에서 정자의 출입문을 보고, 여섯째 계단에서 정자를 둘러싼 담장을 보고, 이제 그만 헤아리고 계단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 주변의 풍경을 살폈다.

 

물 위에 비치는 달의 정자 수월정

본래 위치에 있었던 곳이 아니어서 실제의 정자 주변의 풍경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정자가 있는 자리에서 주변을 보면 그런대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러나 정자는 텅 비어 있다. 선비의 글 읽는 소리도 없고, 선비의 풍류 소리도 없다. 굴뚝에는 연기도 나지 않고, 문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다. 노수신이란 사람이 조선 중종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학문의 길을 갔으나 정권 다툼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라에서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순천으로 괴산으로 귀양살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조가 즉위하면서 다시 관직에 올라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대청마루 앞에는 水月亭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물에 비치는 달이란 뜻이다. 대청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 하늘의 달과 같은 또 하나의 달이 호수 위에 드리운다. 노수신의 밤이면 늘 두 개의 달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잔에 담긴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려고 할 때 또 하나의 달이 잔 속에 들어와 있다. 마음의 달빛은 접어 두더라도 3개의 달은 늘 보아 왔다. 하늘과 땅, 그리고 마음의 달빛이다. 하늘의 달은 바라만 볼 수 있는 달이고, 호수의 달은 마음을 담아 선비 정신을 붓에 담아 달빛에 써 내려가는 시 한 수를 읊는 달이고, 물잔에 담긴 달은 물을 마시니 마음을 안정시키는 달이다. 그래서 정자는 선비의 공간이고 수양의 공간이다. 짧은 시간 선비의 혼을 담아 대문을 나선다.

 

갈대와 노박덩굴

마을길은 나무가 있고 텃밭도 있다. 오솔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첫 번째로 옛 선비들이 주막에 들러 요기를 때우던 그런 음식점이 있다.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열렸다. 가지가 휘어져 있어도 홍시는 떨어지지 않는다. 늦가을 초겨울이 접어드는 시절, 홍시는 언제쯤 떨어질까 기다리는 옛 선비가 되어 주막의 상 앞에 앉았다. 빈대떡에 막걸리가 차려지고, 막걸릿잔에 그득하게 찬 막걸리를 받아 모두 건강을 위하여!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 라는 소망을 외치고 한 잔을 쭈욱 마셨다. 빈대떡 한 점에 산막이옛길 주점에서 그냥 일어날 수 없다. 또 한 잔의 막걸리에 감자전을 안주로 세상의 늦가을을 마셨다.

 

산막이옛길 주막에서

짧은 시간 긴 이야기, 익어가는 홍시를 바라보며 우리는 산막길 옛 주막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마을 길은 화려한 길도 아니다. 그저 정감이 있는 길이다. “나 좀 봐유~”, “들어와유~”이것이 전부이다. 집집이 음식점이다. 음식점 옆의 텃밭에는 무와 배추가 자라고 아직 익지 않는 고추가 열린 곳도 있다. 들국화가 마을길에 피었고, 미국쑥부쟁이도 피었다. 내년을 준비하는 민들레도 보이고 뽀리뱅이, 애기똥풀도 눈에 들어온다. 손두부집의 출입구에는 아리따운 목여인이 벌거숭이로 손님을 맞는 것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한다. 일손이 바쁜 주인 대신 목여인이 덩굴을 몸에 치렁치렁 감은 옷을 입었지만, 늦가을이 되니 잎은 모두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나니 목여인은 발가벗은 알몸이 되어 손님을 맞는다.

 

나좀봐유~, 들어와유~

호숫가에 열린 홍시는 딸 사람이 없어 그대로 새들의 먹이로 변해가고, 텃밭에 메주콩은 잎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뜨리고 싸늘하게 초겨울을 기다린다. 살짝만 충격을 주어도 동그란 보름달 모양의 콩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태세이다. 그 옆을 지나가는 우리는 싸늘하게 느끼며 한마디씩 말을 던진다. “, 아직도 콩을 베지 않는 거야!”, “주인이 개을러서 그렇겠지!‘ ”주인장이 병원에 입원했나!, “우리보고 타작해 가라면 얼릉 가서 하겠다.” “오빠네도 저렇게 있는 거요?, ”아니, 벌써 다 베고 타작만 남았는데, 너희들이 와서 해 주려?, “불러만 주시면 얼른 가서 타작해 드리지요.” 그렇게 앙상한 차림으로 줄지어 서 있는 콩을 향해 서로의 입담은 엮어가고 있었다. 메주콩은 잎이 모두 떨어진 후 12월에서 내년 2월까지도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꼬투리가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농부는 느긋하게 완전히 영글어 여물 때까지 두었다가 추수하면 콩 맛도 더 좋아지기 때문에 늦게 타작하기 위해 추운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텃밭에 남아 있는 메주콩

옛 시골 마을에는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서낭당과 당산나무이다. 산막이 마을에 서낭당과 당산나무 둘 다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명을 잃은 당사나무 한 그루가 고목이 되어 있다. 주로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이 당산나무지만 이곳 마을에는 밤나무가 당산나무였다. 200년간 마을을 지켜온 나무였으나 지금은 그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고목으로 남아 길손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한 몸이 되어 자라는 연리목이 눈길을 끈다. 연리지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고 하여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비유하며 자녀의 지극한 효성과 형제의 든든한 우애,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밤나무 당산목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여객선이 출발한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회귀하는 시간이다. 왔던 길을 여객선으로 다시 탔던 선착장으로 향한다. 짧은 시간 긴 이야기는 산막이 마을 옛길을 걸으면서 펼쳐보았다. 여행은 늘 신선하고, 아름다운 마음마저 조각해 낸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옛길을 걷고, 삼신 바위에서 작은 소원을 이야기하고, 솔밭에서 유람선에 손을 흔들고, 수월정에서 옛 선비의 외로운 삶은 느끼고, 주막에서 한 잔의 막걸리에 빈대떡과 감자전으로 허기를 달래고, 마을길에서 정다움을 담고,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엿보고, 연리목에서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함을 깨닫게 하며 다시 유람선에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의 넓고 열린 생각으로 함께 떠난 산막이옛길 여행은 만점 중에 또 만점이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