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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울릉도 자연유산 답사를 마치고(2)

문화재해설관/ 문화유산답사기

by 국보와 보물 2010. 5. 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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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 아침이 밝았다. 오전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화창한 날씨에 바람은 심하게 불었다. 독도 답사가 되기를 기다렸지만 풍랑으로 독도답사를 할 수 없다는 문자 통보를 받았다. 버스를 이용하여 육상답사를 하기로 하고 버스를 8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맛있는 울릉도 아침밥을 먹고 8시 30분에 버스에 올랐다. 먼저 갈 곳이 내수전전망대로 향했다. 울릉도 바닷가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펼쳐지는 울릉도의 바다와 기암괘석, 산과 나무, 날아다니는 괭이갈매기, 그리고 죽도와 관음도 등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디에 눈의 초점을 맞추어야할지 휘둥거려졌다. 높은 성인봉의 모습에 아래로 흘러내리는 산맥과 하얀 빛을 내는 파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채만한 집의 모습 그 사이에 만들어진 경사진 밭이 울릉도의 비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으면서 내수전 전망대에서 울릉도의 일부분을 보게 되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울릉도에는 아직도 태고의 작태를 간직하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차는 다시 도동을 지나 사동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높은 파도는 사정없이 바위를 때리고 흰 물보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동에는 흑비둘기 서식지가 있는 곳이다. 흑비둘기는 후박나무를 생활 서식지로 하여 열매가 익을 때는 흑비둘이 이곳의 후박나무를 찾아와 서식한다고 한다. 그러데 이곳을 지나가면서 서식지인 후박나무에는 흑비둘기가 보이지 않았다. 차는 퉁구미 향나무자생지와 거북바위를 볼 수 있는 주차장에 섰다. 거북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위력이 물보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는 향나무는 성장을 멈춘 듯 몸을 웅크리고 기암괘석에 겨우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이곳 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4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곳의 자생지는 향나무의 원종이 자생하는 곳으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시 되고 있는 곳이다.

 

 

거북바위와 퉁구미 향나무 자생지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밀려오는 파도에 달려 보았다. 마치 비가 내리는 듯 한 물안개가 세찬 바람에 밀려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밀려오고 부딪치고 날리는 울릉도의 바다와 기암괘석 그리고 향나무를 담아 두었다. 울릉도에서 처음 보는 터널앞 신호등에 버스는 멈추었다. 이곳에 유일하게 있는 신호등이라고 한다. 빨간불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니 터널을 빠져나오는 차들은 서 있는 차들과 바통을 주고받는 것과 같이 보였다.

 

 

비경은 점점 더해 갔다. 휘어진 도로와 지그재그로 나 있는 도로에 간간히 올라가는 자동차의 모습이 겨우겨우 힘을 내어 올라가고 있었다. 선물로 하나씩만 가져가라고 하는 버섯바위 앞에 차에 내렸다. 마치 버섯과 같이 층을 이룬 바위가 향나무를 머리에 쓰고 있다. 버섯바위는 화산이 폭발과정에서 용암이 화산재처럼 부서져 분화구 주위에 쌓이게 되는데 이때 점성이 낮은 화산재가 수증기와 섞여 점성을 가지고 흘러 내려 퇴적된 양상을 보이는 구조를 보이며 형성된 응회암이 바로 버섯바위이다. 몇 구비나 돌았을까 육지의 대관령 길을 연상케 하는 수층터널이 지나니 깎아진 절벽위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물상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해변의 풍경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신이 만들어 놓은 천상의 세계가 아닌가 싶었다. 하얀 물결이 바위에 부딪쳐 밀러나면 또 다시 뒤에서 살며시 받쳐주는 하얀 파도가 만들어 놓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람의 속도는 조금씩 약해가고 있었다. 경사진 밭에서 부지깽이를 채취하는 농부의 모습이 기암괴석에 숨바꼭질 하듯이 하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모노레일을 따고 움직이는 농부의 얼굴 표정은 밝기만 하고 이마의 땀방울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마르고 있다.

 

 

태하터널을 나오니 솔송 섬잣 너도밤나무 군락지와 성하신당이 있는 태하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11호로 지정된 광서명석각문이 있는 곳으로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땅에 묻힌 비스듬히 기운 바위의 평탄한 면에 10행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광서십육년’과 ‘광서십구면’이라 새겨져 있어 조선 고종 27년(1890)과 고종 30년(1893)의 기록임을 알 수 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각석문이다. 이러한 각석문은 이곳 외에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정된 임오면각석문이 이곳 태하리 해변 암벽에 서로 5m의 간격을 두고 3곳에 새겨져 있는데 가로로 쓴 ‘울릉도(蔚陵島)’와 3곳 중에 가운데 것은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 임오오월(壬午五月)’이라 새겼고, 다른 한 곳에는 풍화로 마멸되어 있는데 ‘서상□□김□□(徐相□□金□□)’이란 인명을 새겨 놓았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큰황토구미마을로 들어가면 숲에 자리한 성하신당있다. 이 신당에는 ‘‘성하지남신위(聖霞之男神位)’와 ‘성하지여신위(聖霞之女神位)’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조선 태종 때 안무사 김인우가 울릉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섬사람들을 모아 육지로 출항하기 전날, 김인우의 꿈속에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를 두고 가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출항하려 할 때마다 갑자기 격랑이 일어섬을 떠날 수 없었다. 이에 할 수 없이 예쁘장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속여 섬에 둘만 남겨 두고 배를 띄우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들었다. 8년 후 김인우가 다시 울릉도에 갔을 때 그곳에는 꼭 껴안은 아이들의 백골만 남아 있었다. 이에 사당을 지어 참회하였는데 이로부터 성황당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곳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운전기사의 짤막한 설명이 전부였다. 2년 전에 이곳에 들려 마을 사람으로부터 각석문과 성하신당의 전설을 함께 이야기 했던 날이 있었다. 차는 12구비의 항목령을 지나 현포전망대 앞을 지나고 있다. 이곳에는 경북기념물 제73호인 현포동고분군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많은 무덤이 밀집하여 있는 곳으로, 완만한 경사면 40여기의 무덤이 돌방을 만들어 시체를 넣고 그 위에 돌을 이용하여 봉분을 만들었는데, 이는 경북기념물 제72호인 남서동고분과 같은 형태이나 남서동고분은 입구의 앞은 수직으로 되어 있어 마치 신전의 정면처럼 보이는 것이 차이라 하겠다. 2년 전 남서동고분군을 찾았을 때 실제 고분에 들어가 누워본 체험을 해 보았다. 이러한 무덤은 삼국시대에 울릉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마 주변이 암석지대로 흙으로 무덤을 만들 수 없는 환경조건이어서 돌로 무덤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현포에는 항구가 있으나 몇 척의 배만 있을 뿐 한적한 어촌이다. 항구와 함께하는 테마박물관에는 각종 보석과 희귀 조개와 동물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잡히는 조개와 어류를 전시해 두었더라면 울릉도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될 것인데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계속 길을 따라 가면서 운전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울릉도는 하나밖에 없는 수력발전소가 용출수를 이용하여 발전기를 돌린다고 한다. 계곡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용출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릉도에서 처음 가보는 사찰로 향했다. 입구에 성불사 이정표를 따라 경사진 도로를 올랐다. 지금까지 답사를 하면서 어느 하나 경사가 지지 않는 도로가 없었는데 이곳은 매우 위험스러운 도로를 올라가고 있었다. 다 올라가면 또 다른 전망대로 그 역할을 다 하는 위치이며 몇 채의 집과 사찰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뒤에는 병품처럼 둘러진 미륵봉과 그 옆에 구멍이 뚧혀있는 송곳산이 자연의 멋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앞으로 펼쳐진 망망한 대해에는 송곳봉이 자리하고 있고 물속 수중바위와 코끼리바위가 주변에 흰 거품을 만들고 있다. 남쪽으로 보이는 딴바위와 삼선암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시원한 바람에 약사여래좌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무사히 답사가 끝내주기를 합장의 기도를 올렸다. 한번 왔다가 뒤돌아간 자리는 계속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울릉도 전역을 본 후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상상도 해보면서 나리분지로 달렸다. 이곳의 운전기사들은 곡예운전을 매일 한다고 한다. 육지에서 관광객이 오지 않는 날이면 쉴 수 있으나 오는 날이면 으레 이곳까지 한번 또는 두 번씩 다녀간다고 한다. 갑자기 80도 정도로 꺾어지는 도로에서의 운전모습에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찔한 맛을 느끼고 있었다. 몇 구비를 돌았을까 펼쳐지는 나리분지의 평탄한 들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밭에는 더덕이 자라고 있고 나지막한 지붕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가옥은 바람을 잔득 안고 웅크리고 서 있다. 이곳에 4번째 찾아 왔던 기억으로 먼저 중요민속자료 제256호인 너와집을 들렸다. 금방이라도 무거워 무너질 듯 한 너와집의 지붕에는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귀를 물리고 등을 덮고 그 위에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게 수많은 돌을 얹어 놓았다. 용마루에는 차곡차곡 너와를 올리고 그 위 너와를 덮고 있는 굵은 돌이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4개의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나무와 흙을 이용한 귀틀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 집은 울릉도 개척당시(1883)에 정착민이 지은 가옥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큰 살림집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정지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큰방, 머릿방, 사랑방 순이고, 좌측으로는 마구간 1칸을 연접 배열하였다. 방벽과 외벽사이에는 긴 통로가 나 있어 사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마당 한 켠에는 삿갓모양의 측간을 두었다. 길 건너 앞쪽에는 투막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집은 1945년대에 건립된 집으로 서북방향을 본채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헛간, 우측에는 측간과 돼지우리가 배치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ㄱ’자형을 취하고 있다. 마당 주위에는 바자울을 둘렀고, 평면은 정지, 큰방, 머릿방, 사랑방 순으로 연접되어 있다. 방벽 사면의 처마 끝단에는 막기둥을 세우고 바깥으로는 띠로 이엉을 엮어 만든 우데기를 둘렀다. 방안 천정은 모두 고미반자로 꾸몄고, 지붕은 우진각에 띠로 이엉을 엮어 얹었다. 이러한 형태의 집은 이곳에 모두 4채가 있다. 울릉도의 문화유산 답사는 여기서 맺고 산채비빔밥으로 저심식사를 마쳤다.

 

 

성인봉 자연유산 답사를 위해 떠나기로 하였다. 등산준비를 모두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부 회원은 성인봉 답사가 어렵다고 하여 다시 타고 왔던 버스로 도동항으로 가고 모두 12명이 성인봉으로 향했다. 원시림을 간직한 성인봉의 원시림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구역이다. 원시림이라고 하면 오랜 기간 동안 중대한 피해를 입지 않고 인간의 간섭을 받은 적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을 말하는데, 이곳이 바로 원시림이다. 숲으로 들어가니 오랜 세월을 버틴 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미 고목이 되어 그 생명을 잃어버린 채 계곡에서 썩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너도밤나무도 보이고,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섬노루귀와 섬말나리가 꽃을 피우기 위해 한창 자리고 있는 중이다. 섬단풍나무는 작은 싹을 가지에 띠우고 있다. 얼마쯤 가다보니 투막집 2채가 서로 50m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숲속에 벌판을 이루고 있는 두루미와 가끔씩 보이는 영양초가 녹색의 잎을 넓히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2호인 울릉국화와 섬백리향군락지를 지나고 신령수샘터에서 한잔의 약수를 마시고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었다. 울릉도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산마늘이 절벽에 덕지덕지 자라고 있고, 고개 숙인 고비는 잔득 털옷을 입고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750여종의 식물이 자라는 울릉도에는 봄, 여름, 가을에 한번쯤 이곳을 찾아 어떤 식물이 자라고 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벌써 식물을 위해 3차례 왔건만 아직도 처음 본 야생초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간섭 없이 자라는 성인봉의 식물들은 자연의 보고이다. 빠르지도 않으면서 느린 걸음으로 식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첫 번째 쉼터에 둘러앉았다.

 

 

산나물을 채취하여 배낭에 잔득 넣어 짊어지고 내려오는 부부의 얼굴 모습에는 힘들어 하는 표정이 아닌 희망이 넘치는 행복한 얼굴빛이었다. 이 한 짐을 짊어지고 가면 무게에 따라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1kg에 1만에서 1만 2천원이라고 하니 한 짐을 짊어지고 가면 80kg 정도 된다고 한다. 부부가 짊어지고 가는 양이 100kg이 훨씬 넘어 보인다. 산마늘은 지금이 채취기간이여서 울릉도 사람만이 채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고비는 나물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밭에는 고비를 재배하는 농가 보였다. 성인봉 250m 남겨두고 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을 마시고 마지막 힘을 내어 계단을 올랐다.

 

 

12명 모두 낙오 없이 성인봉 정상에서 야호를 소리쳤다. 시원한 바람에 상쾌한 기분으로 한동안 성인봉에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모두 도동항에 내려와 홍합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달 밝은 밤에 오늘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한잔의 호프로 답사를 마쳤다. (~계속)

 

 

 

출처 : 문화재알림이
글쓴이 : 국보와 보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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