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우사(砭愚榭)는 존덕정 서쪽 약간 언덕진 곳에 위치한 정자이다. ‘폄우(砭愚)’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이다. ‘사(榭)’는 정자를 의미한다. 즉, 이곳에 머무는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덕을 높이라는 의도에서 붙인 정자 이름이다.
「동궐도(東闕圖)」에 현재의 건물에서 남쪽으로 담은로 연결된 3칸짜리 행랑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행랑과 담장이 모두 없어졌다. 또 폄우사 뒤로는 작은 괴석단 공간이 있고, 존덕정과 폄우사 사이에도 괴석이 두 개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다.
「동궐도」에는 폄우사에서 존덕정과의 공간에는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경계를 두고 높이 만큼 흙을 채워 편평하게 하였다.
정조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가 폄우사에 자주 들러 자신을 경계하고,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 특히 정조는 1781년(정조 5) 10월 16일 가을과 1782년 3월 27일의 봄날에 평무사에서 신하들을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였다. 폄우사에 머물면서 책도 많이 읽고 시도 지었다. 정조가 폄우사에서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주제로 지은 시가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권 춘저록(春邸錄)에 ‘창덕궁 후원 서재에서 네 가지 경치를 읊다(禁苑書齋四詠)’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헌종 때 편찬한 『궁궐지(宮闕志)』에는 ‘폄우사에서 사계절을 읊다(砭愚榭四詠詩)’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정조대왕 시 금원서제사영(추월)正祖大王 詩 禁苑書齋四詠(秋月)
畵樓東畔月初生(화루동반월초생) 화려한 누각 동쪽에서 달이 처음 솟더니,
隨意霜華著處明(수의상화저처명) 달빛이 닿는 곳마다 마음대로 밝혀 주네.
大界三千光照遍(대계삼천광조편) 삼천 대계를 달빛이 두루 비추니,
自來天字十分淸(자래천자십분청) 본래부터 하늘은 십분 맑은 것이라네.
훗날 정조의 손자인 효명세자는 폄우사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할아버지가 남긴 시문에 대하여 차운을 하기도 하였다.
폄우사 맨 오른쪽 첫 번째의 기둥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걸린 주련(柱聯)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南苑草芳眠錦雉(남원초방면금치) 남쪽 동산 꽃향기 나는 풀섶에 장끼가 졸고
夾城雲偄下霓旄(협성운난하예모) 좁은 성에 구름 따뜻하니 무지개가 내려오네
絶壁過雲開錦繡(절벽과운개금수) 절벽을 지나는 구름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고
踈松隔水奏笙簧(소송격수주생황) 성긴 솔은 물 건너편에서 생황을 연주하네
林下水聲喧笑語(임하수성훤소어) 숲 아래 물소리는 웃음소리인 양 떠들썩하고
巖間樹色隱房櫳(화각조풍초불류) 바위 사이 나무 빛깔은 방 창살을 숨기고 있네
畵閣條風初拂柳(암간수색은방롱) 단청을 한 누각의 첫 바람은 버들을 막 스치고
銀塘曲水半含苔(은당곡수반함태) 은빛 연못 물굽이에는 이끼가 반쯤 머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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