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지 3일밖에 되지 않았건만 높고 높은 하늘엔 흰구름이 드리워지고 그 사이로 내 뱉는 햇살은 왜 이리도 따가운지, 아직 벼 이싹도 다 나오기도 전에 가을을 내 뱉고 있으니 짜증스러운 내음이 올라오는 듯 하다. 어디선가 가을이 왔다는 매미의 슬픈 가을노래는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옆 연밭에 피어 흔들리는 연꽃은 바람을 내어 그 향기와 풀 내음을 물소리와 함께 퍼득 내 정신을 들게 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진록의 울창한 숲과 그 속으로 가지런히 나 있는 흙길과 하늘뿐이다.
그 흙길을 따라 법문의 세계를 접을 들어 족히 일백보를 걸었을까, ‘春園 李光洙記念碑’가 서 있는 봉선사 비역에 이르렀다.
그 고마운 이는 ‘내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 가게’하고 춘원이 말을 건넸을 때,
‘쓰린 가슴을 부듬고 가는 나그네 무리’의 한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생전에 받은 고마운 은혜를 이렇게 갚을 것인가.
문학비에는 총 1,371자로 된 글이 새겨져 있으니…. 비면에는 ‘春園 李光洙記念碑’, 비음에는 행적기, 뚜벅뚜벅 한 글자를 일고 내리면 또 다시 다음 글자가 기다린다. "춘원 이광수" 이름을 던지면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쓴 소설가라고 대뜸 말을 할 수 있다. 이곳에 들려 다시 "춘원 이광수" 이름을 던지니 봉선사의 ‘春園 李光洙記念碑’가 아니던가. 비켜서서 읽어 내려가니 그 글은 이러이러 하였다.
춘원의 글 …… 그러나 내 자식들이나 가족 또는 친우들이 내 죽어간 뒤에 구태여 묘를 만들어 주고 비를 세워 준다면 그야 지하에 가서까지 말릴 수 야 없는 일이나 만일 그렇게 되어진다면 내 생각으로는 이광수는 조선 사람을 위하여 일하던 사람이다 하는 글귀가 쓰여졌으면 하나 그도 마음 뿐이다 1936년
먼길 가는 손님네야 내 노래나 듣고 가소 다린들 안 아프리 잠깐 쉬어 가소 변변치도 못한 노래 그래도 듣고 가소 시원치도 못한 얘기 그래도 듣고 가소 길가에 외로이 앉어 부르는 노래를 저기 저 손님네야
한 가락만 듣고 가소 가도 또 길이요 새면 또 날이다 끝 없는 길손 불러 끝없는 내 노랠세 1936년
나는 사는 날까지 이 길가에 앉어 있으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하렵니다 누구시나 행인은 들어오 셔도 좋습니다 가고싶으면 아모때에 가셔도 좋습니다 1937년
벗님네 날 찾으심 무얼보고 찾으신고 값없는 이몸 인 줄 아마도 모르시고 행여나 무엇인가 하여 찾으신가 합니 다 1940년
내 평생에 지은 이야기 스물 서른 어느 분 읽으신고 어느분 들으신고 그 얼굴들 눈앞에 그려 놓으면 모두 반가 오셔라 살 닿은듯 하여라 1949년
춘원 이광수 문학비는 ‘내 생전에 그분의 기념비라도 세웠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춘원의 부인 허영숙여사의 말을 듣고, 봉선사 주지 운허 스님 (본명 이학수, 춘원의 팔촌 동생), 주요한, 그리고 삼중당 출판사에서 1975년 10월 11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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