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사적 제132호)
강화천도에 앞서서 1232년 영군을 동원하여 강화에 궁궐을 짓고 도성을 축조하였다. 그리하여 고려는 몽고의 제2차 침입이 있는 1232년 6월 16일 대몽항전의 기치를 들고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이때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하여 산의 이름까지 송악이라 하였다. 고려의 성은 내성, 중성, 외성이 있었는데 내성은 주위 3874척으로 지금의 강화성이며 중성은 1250년에 축성하였는데 주위가 2960여 간이었다. 외성은 1233년에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강화동쪽 해협을 따라 길이가 37070척이였다 한다. 이들 성은 모두 토성으로 축조되었다. 1270년(고려원종 11년) 5월 23일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몽고의 요청으로 강화의 성을 헐었던 것이다. 조선초기에 다시 축성하면서 고려의 내성이던 강화성을 축소시켰다. 1637년 병자호란때 청군)에 의하여 다시 파괴당하고 1677년 숙종조에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하면서 성의 규모를 고려시대의 내성규모로 넓혀서 전면석성으로 축성하였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소가 있고 암문이 4개소 수문이 2개소가 있었다. 성문의 문루는 남문에 안파루, 서에 첨화루, 북에 진송루, 동에 망한루가 있었다. 첨화루는 1711년에 건립하였고 안파루는 퇴락되어 쓰러지자 1973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북문의 진송루는 원래 문루가 없었던 것을 1783년 성을 개축하면서 건립되었다. 수문은 서문과 동문 옆에 있었는데 서문 옆의 것은 1900년경에 갑곶진 옆으로 옮겨져 있다. 조선말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일본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침의 역사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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