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덕정은 조선시대의 정자로, 지금의 자리에는 조선 선조 때 정자가 있었으나 훼손되어 인조 때 다시 지어 육면정이라 불리다가 뒤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존덕(尊德)’이란 덕(德)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군주가 덕성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를 할 때 성군이 된다는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해 세워진 정자이다. 존덕정에서 남쪽의 언덕 위에 승재정과 그 아래 반도자가 훤히 보이는 곳에 관람정도 함께 조망할 수 있으며, 주변은 숲이 우거져있어 사계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궁궐지(宮闕志)』에 의하면, ‘존덕정은 심추정(深秋亭) 서북쪽에 있다. 연못이 있어 반월지(半月池)라 부른다. 1644년(인조 22) 갑신에 세웠다.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부르다가 뒤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고쳤다. 다리 남쪽에는 일영대(日影臺)를 두어 시각을 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자 북쪽에는 반월형 연못과 네모난 연못이 나란히 있는데,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지완다. 걸려있는 현판 ‘존덕정’은 현종의 어필이다. 또 선조의 어필로 새긴 두 수의 한시 게판이 걸려 있기도 하다. 선조 때 이미 이 자리에 정자가 있었으나 언제인가 훼손되어 인조 때 다시 정자를 짓고 육면정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존덕정의 ‘존덕(尊德)’은 『중용』의 ‘존덕성도문학(尊德性道問學)’에서 따온 말이다. ‘존덕성’이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덕성을 존중하여 그것을 보존·확충하는 방법이고, ‘도문학’은 학문을 통하여 선한 덕성을 배양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정조는 규장각 각신과 이들의 형제와 자제들을 가끔씩 후원에 초대했었다. 1793년 2월 28일 <일성록>의 기록에 “이날 사옹원에 있는 사람에게 명하여 존덕정 아래 계곡 가의 꽃과 나무가 우거진 곳에 꽃으로 만든 떡(화고)를 갖추어 놓게 하였다. (생략) 마침내 보여(步輿)로 존덕정에 나아가니, 사옹원에 있는 사람이 화고와 귀한 음식을 올렸다. (생략) 대내(大內)로 돌아오려고 할 때 다시 신하들을 불러 이르기를, 오늘 일은 매우 즐거웠다. 술통에 아직도 술이 남아 있으니, 이 존덕정에 처음 들어온 신하들은 다시 주량대로 다 마시라”라 하였다.정조가 스스로 ‘萬川明月主人翁(만천명월주인옹)’라 호를 삼으며 이 정자에 ‘萬川明月主人翁 自序(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글귀를 건 것으로 존덕정이 보다 유명하게 되었다. <홍재전서>에 따르면, 정조가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생략)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대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일 것이다. (생략) 나의 연거(燕居) 처소에 ’萬川明月主人翁(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써서 자로(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라 하였다. 순조는 재위 11년 여름 이곳에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응강(應講)을 하기도 하였다.존덕정은 두 개의 기둥을 반월지에 담그고 있다. 지붕도 두 겹으로 만들어져 다른 정자와 구별된다. 안쪽에는 각 모서리에 굵고 둥근 기둥을 세웠고, 바깥쪽에는 각 모서리마다 보조 기둥 두 개를 포함하여 세 개의 가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기둥이 이중 구조를 띠고 있으며, 문을 달지 않아 사방이 확 트여 있다. 기둥 사이에 걸쳐 있는 창방 아랫부분에는 빗살문과 꽃무늬 교창이 장식되어 있다. 기둥 아래쪽 난간은 ‘만(卍)’자 살 모양이다.존덕정의 구조는 연못 축대 위에 장대석 2개를 연못 쪽으로 V자형으로 길게 뻗쳐 놓고, 장주형 초석으로 받친 다음,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굵은 기둥 6개로 육모 지붕의 건물을 세우고, 그 밖으로 귀퉁이마다 가는 기둥 3개를 세운 위에 다시 기와를 얹어서 겹지붕 구조이다. 안 기둥 사이에는 평난간을 둘렀고, 바깥 기둥사이에도 난간을 둘러 2중 난간이 되었는데 이 또한 보기 드문 구조이다. 안쪽 기둥 위 창방 아래에 꽃살 교창를 달고 그 아래에는 낙양각을 붙였다.정자에 올라 위를 보면 네모 모양으로 대들보를 만들고 그 속에 천장이 다시 육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다. 천장 안에는 왕의 정자답게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지금이라도 용이 살아 움직이며 하늘로 승천할 것 같다. 이 일대에서 존덕정에만 용이 그려져 있어 정자 중의 정자라고 할 만하다. 창덕궁 후원의 특징은 화려한 꽃이 피는 관상수들이 많지 않고 활엽수가 많다. 창덕궁 원림을 배경으로 존덕정이 물에 비친 모습에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한계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이 풍경에 숙종은 존덕정에 들러 「존덕정우음(尊德亭偶吟)」이란 시를 남겼다. 氷解池塘春水錄(빙해지당춘불록) 얼음 풀린 봄 연못물도 푸르러 赤魚時遂白魚遊(적어시수백어유) 붉고 흰 물고기 어울려 노는구나 閑庭無事日初永(한정무사일초영) 한가한 뜰에 일 없고 처음으로 날 길어지니 斜倚危欄伴睡鷗(사의위난반수구) 높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조는 갈매기 벗하네존덕정에 주련(柱聯)을 걸었. 정자 입구 오른쪽 기둥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들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盛世娛遊化日長(성세오유화일장) 태평성세라 즐거움도 덕화(德化)의 날은 오래고 羣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많은 생명 땅에서 나니 봄바람 화창하게 부네 庶俗一令趨壽域(서속일령추수역) 모든 백성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이어지고 從官皆許宴蓬山(종관개허연봉산) 관원들 모두 봉래산 잔치에 모여드네 艶日綺羅香上苑(염일기라향상원) 화려한 봄날 비단처럼 상림원(上林苑)에 향기롭고 沸天簫鼓動瑤臺(비천소고동요대) 울러 퍼지는 풍악소리 요대(瑤臺)를 뒤흔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