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식물해설관/ 토종식물칼럼

창경궁 야생초 단지의 아픔

국보와 보물 2015. 3. 7. 21:20

[칼럼] 토종식물

창경궁 야생초 단지의 아픔

시인.수필 정진해

오랫동안 가뭄으로 한 방울의 빗줄기라도 내려 줬으면 하는 생각은 사람만의 소원이 아닐 것 같다. 도시의 공원이나 고궁의 뜰에도, 산과 들에도 지표면에 가까운 곳에 뿌리를 내리는 초본식물의 아픔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농부는 밭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들어가는 꽃을 보고 비가 오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환경미화로 대형 화분이나, 자투리 공터에서 꽃을 피우는 원예식물에는 언제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야생초와의 대조적인 현상이다. 원예종에는 열심히 돈을 투자하면서 까지 물을 주어 화려한 꽃을 피우도록 한다.

서울에 남은 5대 고궁 중 조선조 성종 14년에 세조비 전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된 창경궁으로 향했다. 조선의 건축미를 보여주는 홍화문, 화려한 단청으로 단장한 모습은 궁궐의 위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옥천교의 동자석에 새겨진 연잎문양은 우리의 전통건축의 푸근한 지붕을 연상케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들어가라는 무언의 전갈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궁궐의 짜임새에는 자연의 이치에서 만들어졌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연화문으로 짜인 천장의 중앙에는 봉황의 날갯짓이 천상의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게끔 한다. 각종 건물 현판의 곽에 그려진 팔보와 연화문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세계에서 얻어진 의미를 부여한 상징성 문양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창경궁은 우리나라 최초의 온실이 있고 그 주변에 야생화 단지를 만들어두고 많은 야생초를 심어 이곳이 궁궐의 야생화 단지임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찾는가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궁궐의 야생화를 보기 위해 창경궁을 찾아 관람을 한다. 춘당지에 담긴 물은 잔잔한 호수가 되어 물살을 가르는 오리들의 천국인 것 같다. 왜가리도 날아와 오후를 즐기는 모습이지만 유영하는 고기들이 숨을 곳이 없다. 먹이를 찾아 유영하는 것보다 그늘을 찾아 유영하는 것 같이 보인다. 넓은 연못에 수초 한포기 볼 수 없는 허전한 공간에는 그림자가 거울을 만든다. 자연의 조화를 벗어나 있는 풍경이다. 왜 연못에 수초를 심지 않았을까? 볼 수 있는 것은 어둡게 물든 연못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고기들이 가르는 물살과 헤엄을 치는 오리들의 모습, 주변의 나무 그림자가 전부이다. 옥천교의 동자석에 새겨진 연잎처럼 연을 비롯한 수생식물을 심는다면 새로운 궁궐의 중후한 멋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제부터인가 연못과 유리온실 사이에 만든 야생화단지는 많은 종류의 식물이름표가 꽂혀 있다. 처음 이곳에 식재된 야생초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달아 쉽게 우리의 식물을 알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해 두해를 지나면서 야생초는 자기 스스로 종족번식을 위해 남의 이름표가 무색할 정도로 퍼져나가 지금은 이름과 식물이 일치가 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이 많이 있다. 또한 이름 뒤에 있어야할 식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빈 터만 남아 있다. 아무리 일찍 돋아난 식물이라해도 6월이면 한창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야 하지만 풀 한포기 없는 빈터를 지키는 이름표 하나가 어쩐지 외롭게 보인다.

올해 들어와 특히 가뭄이 심하면서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모두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단지이면서, 가뭄이 시작되면서 내버려둔 이곳의 식물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일까 어쩐지 측은하고 불상한 느낌마저 든다. 유리온실의 식물에는 열심히 물을 주어 싱싱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지만 함께 관리하여야할 야생화 단지에는 물 한 모금 뿌려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타 들어가는 식물의 모습은 하루라도 빨리 비라도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잊어버린 것 같다. 며칠에 한 번씩 물을 뿌려주었다면 애써 자라는 식물이라도 초록색 잎과 다양한 색의 꽃이 피는 모습을 관람과 관찰이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애써 만들어 놓은 작은 단지에 여린 야생초가 시들어가는 모습은 왠지 고궁에서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앞선다. 목말라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한 컷의 사진을 남겼다. 지금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훗날 다시 이 자리에 생동감이 넘쳐나는 야생초가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가 찾아오는 동산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