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자신의 몸이 귀중함을 알고 있다.
[칼럼] 토종식물
식물은 자신의 몸이 귀중함을 알고 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야생화를 관찰하다보면 줄기, 잎, 꽃에 곤충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곤충은 꼼짝도 하지 않고 붙어 있고, 열심히 잎을 갈아먹고,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바쁘게 행동하는 것을 본다. 눈으로 보아도 식물의 세계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정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평화로운 풍경은 그들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도 평화로운 삶이란 자유보다는 해방이란 말이 더 가까울 것이다. 하루도 아니 조금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수많은 곤충, 균류, 바이러스, 동물(인간도 포함) 등으로부터의 위협과 자연으로부터 오는 환경적 위협, 옛 조상으로부터 겪어 보지 못했던 인간의 생태계 파괴 등으로 몸서리치고 있다.
씨가 떨어져 땅속에 묻히는 과정동안 식물은 이미 선조로부터 유해 장애물로부터 방어하면서 살아야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이다. 까마득히 오랜 세월동안 물려받은 방어수단에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놀라운 것들이 있다. 태초의 인간도 스스로 적으로부터 침입을 받지 않기 위해 방어수단을 구축하여 싸워왔던 것도 아마 식물의 방어수단에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식물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몸에 지니고 있는가 하면, 곤충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화학전을 감행하기도 하고, 위장술을 쓰기도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한 준비도 한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다는 것이다. 내년에 싹을 피우고 꽃을 피게 하기 위해 비늘을 덮거나 털옷을 입혀 겨울을 나게 한다. 추위와의 전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다.
식물은 철저한 프로그램에 의해 정확하게 싹을 틔우기 위한 가장 알맞은 환경에 맞춰놓는다. 그래서 어린싹은 부모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의해 정확하게 실행에 옮긴다. 만약에 부모가 탄생시킨 씨앗을 바로 아래에 떨어뜨린다면 잎이 만든 그늘에서 죽고 말겠지만 부모식물은 씨가 맺히면 어떻게 해서라도 먼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마련해 준다. 새로운 곳에서 싹을 띠워 열매를 맺는 또 다시 멀리 보내는 프로그램대로 움직인다.
살기 위한 방법으로 무기를 사용한다. 끔찍스러운 핵무기 같은 것이 아니지만 비록 사람에게는 약하지만 동물과 곤충들에게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잎과 줄기를 갉아먹는 곤충의 애벌레나 달팽이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가시를 촘촘히 박아 놓는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등판에 수많은 송곳을 박아 놓은 것과 같은 동일한 원리이다. ‘쐐기풀’의 가시는 주사기와 같아서 자기를 먹으려고 하는 동물에게 독침 주사를 놓는다. 아까시나무의 큰 가시는 청설모나 다람쥐 같은 동물이 타고 오르며 가지를 부러트리거나 잎을 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장미와 찔레나무, 해당화 등의 가시도 곤충과 동물로부터의 몸의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몸에 두르고 있다.
잔디, 갈대, 억새풀 등은 잎 가장자리에 규산염의 날카로운 칼날을 자기고 있어서 초식동물이 풀을 먹다가 혀를 벨 수 있는가 하면 사람이 이 풀을 잘못 다루다가는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손을 벨 수 있다. 식물의 잎은 가장자리에는 크고 작은 톱니를 가지고 있다. 동물이 잎을 뜯어 먹일 경우 톱니에서 독을 품어내어 소화에 치명타를 주기도 하고 꼼짝 못하게 정신을 잃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람은 이 독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복수초는 가장 무서운 독을 지니고 있다. 겨울동안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슴, 노루, 토끼 등의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소나무의 송진도 독이 있지만 사람과 송충이만 먹을 수 있고 사슴이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린다.
옥수수나 면화 같은 식물은 애벌레가 몸을 갈아 먹으면 말벌이 좋아하는 냄새를 방출하여 구조를 요청하는데, 이 냄새를 맡고 말벌이 날아와 애벌레를 잡는가 하면,
벚나무처럼 잎자루 2곳에 꿀을 내보내 개미를 오게 하고 개미는 이 꿀을 먹으면서 진딧물을 잡아먹고, 나방이나 나비의 애벌레를 죽이고 꿀을 먹는 경호원으로 활용한다.
딱정벌레가 공격해 오면 암컷 딱정벌레 냄새와 비슷한 물질을 배출하는 식물도 있다. 이때 딱정벌레는 그 냄새로 암컷의 환상에 쫓아 헤매다가 만다.
담배는 바이러스가 자신에게 침범하면 경보물질을 발산하여 이웃 담배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면 금새 면역물질을 만들어 몸을 보호토록 한다.
양파와 마늘도 가만히 두면 냄새가 나지 않지만 조금만 상처를 내면 매운 냄새를 내어 곤충이나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고 한다.
피톤치드, 송진 같은 물질도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들이다.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식물도 있다.
침입자가 자신의 잎을 건드리면 갑자기 잎을 접어서 침입자가 혼비백산 도망가게 만들기도 하고,
향나무는 1년생 잎은 동물이 먹기 좋게 부드러운 가시 같은 잎을 만들고 다음해에는 잎을 부드럽게 바꿔버리면 동물의 기억에서 벗어나게 하여 먹지 못하게 만든다.
자기가 처음 먹어본 것만 먹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도 아래쪽에 자라는 잎은 많이 갈라져 있어 동물은 그 모양만 기억을 해 두지만 은행나무는 위쪽으로 갈수록 잎의 모양이 갈라지지 않게 만든다. 동물은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먹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에 사람은 항상 은행나뭇잎의 무성한 잎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식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무수 많으나 인간은 그 방법을 알아낼 수 없을 뿐이다.
식물은 자연 환경에서 오는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으로부터 받는 피해는 방어할 수가 없다.
식물의 독을 이용해 인간의 병든 곳을 치유케하고, 식물을 이용해 다양한 삶의 질을 향상 시키려 한다.
인간은 식물이 스스로 목숨을 부재하기 위해 자기방어를 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 방법을 무시하거나 그 방법이 있는 것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은 수동적이면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고 평화롭게만 보이려고 한다.
정말 멍청하고 불쌍한 존재라고 부르고 싶지만 식물은 오늘도 인간을 먹여 살리고 숨을 쉬게 하고 옷을 입히고 있다.
인간이 자연의 큰 그림을 깨지만 않는다면 식물은 예전과 같이 오늘도 그 자리에서 화려한 색을 내면서 큰 그림을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