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와 보물 2015. 3. 7. 21:17

식물의 첫 사랑

이 세상에 생명체는 동물과 식물로 나누고 있지만 각기 생존방법은 다양한 기준을 정해두고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식물을 보고 있으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신비감을 간직하며 종족보존이란 큰 책임을 거뜬히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 봄부터 얼었던 땅을 녹이며 자란 새싹이 어느새 줄기와 잎을 내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에서 나온 씨앗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 퍼저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짜인 법칙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려 하는 식물은 하나 같이 숲속에서 자라는 식물이 많이 있다. 또한 이른 봄 밭이나 논에서 자라는 식물은 농부의 밭갈이를 알고 있는 듯 그 시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가 하면, 숲에 자라는 초본식물은 나무가 잎을 내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버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첫 단계가 수분이다. 씨를 맺는 식물만이 꽃가루를 만드는데, 수술에 달린 꽃밥의 가루가 암술의 머리까지 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금낭화처럼 스스로 자가수분에 의한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타가수분에 의한 방법으로 행하여진다.

타가수분에 의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많이 행하여지는 방법은 충매화이다. 호박꽃이나 무꽃, 코스모스, 장미 등 대부분의 꽃은 곤충에 의해 화분이 주두로 운반되어 수정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벼과, 방동사니, 소나무과, 은행나무, 환삼덩굴, 얼레지 등과 같이 바람에 의해 수분이 되는 것 즉 풍매화이다. 무궁화, 동백과 같이 새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는 방법인 조매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항아리모양의 화관, 밝은 색의 꽃, 많은 화분과 꿀을 가지고 수술과 암술이 대부분 화피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꽃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물을 매개로 수분이 이루어지는 수매화가 있다. 이 방법은 수꽃과 암꽃 모두 물속에 있고 화분이 물속에서 확산되면서 수분이 되는 이삭물수세미가 있는가 하면, 암꽃이 물 밑 가까이에 있어서 화분이 가라앉으면서 수분이 이루어지는 아디말이 있다. 물벼이끼, 나사말처럼 물위에서 수분이 이루어지는 식물도 있는가 하면, 튀는 빗방울에 의해 수분하는 식물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꽃식물은 곤충과 다른 동물에 의존하여 수분한다.

이와 같이 수분된 꽃가루는 수정기관인 암술머리에 붙으면 암술대 속으로 꽃가루가 밑으로 파고 내려가 씨방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부터 신방이 꾸려지면서 정자세포를 방출하여 난세포를 수정시키며 밑씨가 성숙하여 씨를 맺게 한다.

충매화인 골담초가 꽃을 피운 것을 우연히 지켜보는 시간이 있었다. 골담초의 꽃은 상하로 구분되어 있으며 상부의 꽃잎은 뒤로 젖혀져 있고 하반부의 꽃잎은 벌이 앉을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한다. 벌이 하반부 꽃잎에 앉으니 숨어 있던 수술과 암술이 나타나면서 벌 몸에 붙어있는 다른 꽃의 꽃가루는 암술머리로 받고 수술 꽃밥이 살며시 벌 몸에 닿는 것을 보았다. 벌은 꽃가루가 묻는 것도 모르고 멀리를 꽃잎 사이로 넣고 꿀을 빨고는 다른 꽃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자작나무의 수술 한 개의 꽃밥에서 550만 개의 꽃가루 입자를 방출한다고 한다. 바람에 의해 흩날리는 꽃가루가 이때면 주변의 보도와 연못 표면에 꽃가루 막으로 뒤덮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암술머리에 닿는 꽃가루는 여러 개라고 하지만 암술은 하나만의 꽃가루를 선택하게 된다.

암과 수의 만남으로 종족보존은 매년 한 번씩 이루어지는 첫사랑의 달콤함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아름다움의 만남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