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태안 백화산에 핀 백제인의 얼굴(2013.06.20)
태안 백화산에 핀 백제인의 얼굴(2013.06.20)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차 안에는 찜질방과 같은 느낌이 온다. 평일 아침은
서해안고속도로를 가득하게 매워 놓았다. 목표 지점까지 언제쯤 도착될련지 시름시름 맥이 빠진다.
더위 때문에 머리부터 줄줄 내려오는 땀을 닦아 내며 창을 열어 바람을 맞아 보지만 쉽게 땀은 마를 줄
모른다. 가다 서다 반복하면서 서해대교에 접어 들었다. 활짝 연 창은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었
다. 다시 시작되는 정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서산 톨게이트까지 평소보다 약 1시간이상이 더 소
요된 시간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시간대로 실천하려고 했던 계획은 하나씩 뒤로 밀려나야할 것
같다. 태안으로 달렸다. 벌써 1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백화산을 올라야 한다.
태안이 가까워지면서 우뚝 솟아 있는 백화산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임을 보여주고 있다. 산길을 접어
들었다. 정상을 향해 나 있는 도로는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처음 찾아가는 길이지만 무사하게
태을암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마애삼존불입상이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산성과 봉수대터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마애삼존불입상을 찾았다. 주변에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길이 있다.
총총 오르는 계단은 숲속으로 빠져 들어갈 듯 한 느낌이 와 닿는다. 한 줄기 물줄기가 더위를 식힐 만
큼의 량은 아니지만 작은 물소리를 듣고 있자니 시원한 느낌이 온 몸을 엄습해 온다. ‘一笑溪’ 보잘것
없는 계곡이지만 한번은 웃을 수 있는 계곡이란 뜻이 있는 듯 하다. 아무리 보아도 계곡 같지는 않지만
조금씩 소리 소문없이 흘러가는 물줄기는 있으니 한번쯤 웃어넘길 수 있는 계곡으로 봐 달라는 어느
선사가 이곳에 암각을 남겼나 보다. 큰 바위에 “太乙洞天”이란 글도 새겨 넣었다. 큰 새가 날아와 이
작은 계곡에 앉았다는 뜻인 듯 하다. 작은 계곡이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크고 작을 수 있다는 뜻도 내
포되어 있는 것 같다. 숲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고 숲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있다.
그 속에는 계곡이 있기에 시원한 백화산 중턱의 태을암 기슭에 앉아 땀방울을 날리고 있다. 팔각의 3
단 기단 위는 의자처럼 보이지만 어느 누가 이곳에 ““感慕臺” 라고 새겨 두었다. 경치 좋고 새소리가
있고 물소리가 있는 동천에서 사모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감모대에서 서로 마주 앉아 세상의 깊은 시
름을 잊고 한 수의 바둑돌을 놓는 다면 부러울 것이 없지 않겠는가?
자연의 섭리를 보고 있는 마애삼존불입상은 이곳을 찾는 중생들에게 심성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아름
다움을 함께 얻을 수 있도록 베풀고 있지 않을까? 전각에 갇혀있는 삼불입상은 부채꼴 바위 면에 돋
을새김 하였는데 세월의 풍화로 인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선과 윤곽을 알 수 있을 만큼의 모습은 온화
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중앙에 키가 작은 보살상을 배치하고 좌우에 키가 큰 불입상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인 불입상 배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특이한 삼존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 속에 부부가
갓 태어나 아장 아장 걷고 있는 아이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양감 풍부한 얼굴에 크게
번지는 미소를 간직한 2구의 불입상은 힘이 들어간 모습의 당당한 넓은 어께와 장대한 체구는 옛 백제
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길게 내려 뜨려진 옷은 U자형 주름과 Y형 속옷이 보이는 착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만지면 주르륵 흘러내릴 듯 한 질감의 옷으로 새겼을 것이다. 연꽃무늬 대좌는 도톰한
듯 날카롭게 나타냈으며, 좌우 구 불상 사이에 끼어 있는 보살입상은 관을 쓰고 있으며 길게 어깨까지
늘어뜨린 것은 귀가 아니고 머리카락인 듯 하다. 희미하게 보이는 U자형 주름에 두 손은 한데 모아 피고
있는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두 불입상의 얼굴에 비해 네모난 모양이 아니고 달걀형을 하고 있으며
통통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다. 어깨에서 내려온 천의는 무릎 부분에서 엑스자형으로
교차하며 넓게 표현하였다. 3구 모두 발아래에는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이러한 형태의 불입상은 이곳
이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로써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유사한 점이 많으며, 그곳의 삼존불을 사람들은 ‘백제인의 미소’
라고 불러 오고 있다. 높은 곳 바람과 눈보라, 비로 인해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잃어 왔지만 그 내면 깊
숙이 새겨진 곳은 오늘도 그 모습이 어렴프시 남아 있어 옛 백제인의 모습을 살며시 보여주고 있다.
전각이 설치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완전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 후에 더 이상 마멸되지 않게
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전각의 전체의 모습에서 빗나게 지어진 것 같다. 주변은 모두 나
무창살을 만들어 벽을 대신하고 있다. 어쩌면 삼존불이 감옥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바로 옆에는 정상
으로 오르는 차도가 나 있어 문화재 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할 것 같다.
발길을 백화산성으로 향했다. 정상에는 군부대 관련 시설이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고 산성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나무 그늘에는 돌나물이 노란 꽃을 피웠다. 꽃이 피기 전 줄기를 잘라 물김치를 먹으면
서 시원한 초여름의 갈증과 더위를 식혔던 먼 날이 생각났다. 점점 넓어지는 태안읍내의 모습은 어느
새 발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채반의 원 둘레만큼이나 큰 도시일까? 백화산 정상에서 보
는 시가지의 모습은 모두 지상의 모자이크로 수를 놓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바다는 운무에 의해
가려져 있고, 들판에 보이는 농부의 일손은 점점 나무 그늘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무너져 없어지고 기단석만 남은 산성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일부만 남아 있는 석축은
백화산성 전체를 대표하는 전시품에 불과하다. 그 끝에 봉긋하게 무덤같이 올라온 곳이 봉수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전국의 봉수대를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작은 봉수대가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이 봉수는 동쪽의 서산 북주산과 남쪽으로는 부석면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2곳에 샘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샘터에는 백화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갈증을 해소시킬 만큼의 물이 마르지 않고 언제나 가득 찬다. 넘치면 태을동천을 지나 긴 계곡을 타고
서해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백화산 정상 표지석 앞에 서서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바다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잠시 앉았다. 전체 길이가 700m에 이른다고 하는 성곽은 봉수대 주변 약 20m 정도와 높이 2m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태을암 방향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기단석만 노출되어 산을 오르는 산길로
변해져 있다. 더 이상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모두 무너진 상태에서 확인이 어려웠다.
태안의 진산을 올라 옛 백제인의 모습이 담긴 마애삼존불에서 외면의 예술적 가치와 내면의 구김살
없이 잔잔히 풍겨 나오는 정감에 또 다른 미소로 얼룩져 보았다. 옛 성곽을 지키던 장병들이 마셨던
샘터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셨다. 백화산의 아름다움과 불쑥불쑥 튀어 나온 근육질의 바위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안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발아래 보이는 서해의 잔잔히 밀려
드는 물살을 만나기 위해 태안에서의 두 번째 답사지인 신두리 해안사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