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홍릉(사적 제207호)에 비가 내리고(2013.06.12)
홍릉
사적 제207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조성시기 : 1919년
수장자 : 26대 고종(高宗)
고종은 1852년(철종 3) 7월 25일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정선방의 사저에서 태어났다.
1863년 12월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신정왕후 조씨가 고종을 양자로 삼아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했다.
흥선대원군의 치세 아래 있던 고종은 1873년(고종 10) 친정을 시작,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맺고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으며, 그들의 강요로 인해 그해 7월 순종에게 통치권
을 물려주었다.
1919년 1월 21일 덕수궁에서 춘추 67세로 승하하였다.
홍릉은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능역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에 따라 정자각 대신 일자각 침전이 세워지고 문석인, 무석인과 그 밖의 석수들이 침전 앞으로 옮겨졌다.
능침의 초, 중, 하계도 없어졌으며, 석수들은 그 종류를 더하게 되었다.
1895년 일본 정부의 사주로 낭인에 의해 경복궁 옥호루에서 시해당한 명성황후는 궁궐 밖에서 시신이 소각되었
다.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해 복호되고, 1897년(광무 1) 명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해 11월 국장으로 동구릉의 숭릉 오른쪽 언덕에 묻혔고,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지금의 자리로 천장하여 고종과 함께
안장되었다.
[모처럼의 답사날에 내리는 비는 능침과 능상의 석조물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일직선화된 능 구조] [조선의 왕릉에는 정자각(丁)이나 황제의 릉앞에는 일자각
의 침전을 마련하였다.
[정면 3칸의 비각은 앞 문이 좌우 2짝의 접이식 문을 [어정이 잘 보존되어 있가.]
달았다. 왕과 황제의 능 비교할 수 있는 곳]
[조선의 왕릉 능침공간에 석양, 석호, 석마가 있으나 이곳 [수복방]
홍릉에는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왕릉과 황제릉을 비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