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울릉도 자연유산 답사를 마치고(1)
울릉도 자연유산 답사를 마치고(1)
2010년 4월28일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울릉도 자연유산답사의 첫발이 회기동에서 시작되어 대한문앞, 압구정 현대백화점까지 이어졌다.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를 이어지면서 도착된 묵호여객터미널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울릉도로 떠나기 위해 모두 대기 중이다. 혹시 바람이 불어 출항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 발길을 돌려야 될 상황에 처해있는 시간이다. 9시 30분이 되자 한사람씩 승선이 시작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승선이 이루어짐으로써 여객선은 울릉도로 간다는 신호이다. 자리에 앉아 여객선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울릉도의 비경은 TV로 통해 계속 안내되고 있었다. 모두들 눈을 TV에 집중되고 있는 동안 창밖은 미끄러지는 묵호항의 풍경이 뒤로하며 여객선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빠져나가는 여객선의 방향은 울릉도이다. 잔잔했던 항구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바다로 떠난다.” 이 말 밖에 생각나지 않는 망망대해에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바다는 수많은 산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고 작은 폭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처음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서움이 엄습해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파도와의 싸움으로 눈을 감고 창문에서 눈을 돌렸다.
창을 때리는 동해의 푸른바다는 사람들을 그냥두지 않았다. 높이 올라갔다가 계곡으로 곤두박질하는 배의 요동은 끝없이 되는 동안 배는 어느덧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되었다는 안내방송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선착장에 내렸다.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은 잔득 흐려져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사나운 하늘의 구름이 요동치고 있었다. 높은 성인봉까지 모두 삼켜버린 채 오늘의 일정의 차질이 생긴 문자가 날아 왔다. 바람과 비 그리고 파도로 인하여 독도 출항은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크나큰 일정상의 문제가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피켓을 든 새신민박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3대의 차를 이용하여 나리동에 있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첫 울릉도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오늘의 일정에 부득이 변경되어 봉래폭포를 첫 답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용트림하던 구름은 기어코 비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반갑지 않는 비가 우리의 답사일정을 혼돈스럽게 해 놓았다. 3대의 택시를 이용하여 봉래폭포로 향했다. 저동천의 수원지인 주삿골에 있는 3단으로 이루어진 봉래폭포는 용출수로 1일 3천 톤의 물이 쉴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는 짙은 초록빛의 삼나무 숲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여유도 가졌다. 폭포앞 전망대에서 이곳에 왔다갔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도 촬영하면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물길과 함께 내려오면서 천연에어컨이라고 명명된 실내에 들어가니 지하수의 찬공기가 바위틈으로 용출되어 내부 온도가 항시 4°c를 유지한다고 한다. 울릉도에서 첫 답사지인 봉래복포를 뒤로 하고 독도전망대에 오르기로 하였다.
저동에서 다시 도동으로 고개를 넘어서니 빼곡히 들어차 있는 건물과 좁은 도로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전망대로 오르기 위해 매표소에서 문의를 하니 정전으로 인해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되었다고 한다. 바람과 비로 인한 답사의 일정이 점점 꼬여가기 시작하였다. 발걸음을 독도박물관으로 옮겼다. 해설사로부터 독도에 관련된 해설을 들었다.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알리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여겨 본 자료 중에서 <조선국지리도 소재 팔도총도>은 임진왜란 당사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구끼 등이 제작한 1592년의 지도로서, 팔도총도와 강원도 별도에 우산도와 울릉도가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현재 발견된 일본의 지도 중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그린 최초의 지도라고 한다. 독도와 울릉도를 위해 몸을 바친 안용복의 활약상에 대해 상세하게 전시되고 있다. 그는 동래 출신 어부로, 1693년과 1696년에 일본 호끼슈(현 시네마현) 태수를 만나 담판을 하여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확답을 받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활약으로 1697년 일본 도쿠가와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불법 월경을 금지하겠다”는 서한을 보내옴으로써,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울릉도의 향토 사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울릉도에서 어업과 산촌지방의 농업에 관련된 각종 생활용품이 진열되어 있어 울릉도의 생활모습을 어느 정도 가름할 수 있었다. 옛 말에 “고양이가 하늘이나 천정을 보고 누웠으면 3일내에 바람이 불거나 큰비나 눈이 온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는 바다를 생계터전으로 삼는 어민들은 변화무상한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조건이다.
사료관 중앙에 세워진 “신묘명각석문”에 눈길이 갔다. 울릉도에서 이러한 석각이 3곳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년 전에 울릉도 문화유산 답사를 왔을 때 확인하였던 각석문이다. 이 각석문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937년 도동 축항 공사 때 바다에서 인양된 비인데, 내용은 수토관 일행의 명단 등으로 보인다. “삼척영장 겸 첨절제사 박석창”은 1711년 1월부터 1712년 12월까지 삼척영장으로 재임한 사실이 있는 인물이다. 약 300년 전 조선 조정이 정기적 수토의 목적으로 삼척영장 등을 울릉도에 파견하였다는 증거자료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된 농어촌생활용품이 별 차이는 없으나 진열된 용품 중 “요강”의 입구가 서로 다른 것이 남자와 여자용으로 구분되지 않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독도박물관과 향토 사료관에서 전시물 답사로 오늘의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저동항 어판장에 들려 해삼과 소라, 광어회로 이곳의 해산물을 맛보고 내일 답사를 준비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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