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자연과 문화재속으로(2)
2007년 5월 8일 울릉도의 첫 밤은 일찍 잠에서 깨어 혼자 카메라를 메고 도동의 섬개나무와 섬댕강나무 자생지를 찾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몸이 날아 갈듯하였다. 조심조심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서 정상에 오르니 철재 울타리가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였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로 돌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 군락지 임을 확인하고 행남등대를 가기 위해 산길을 헤메기 시작하였다. 길은 가다 보면 2~3갈래가 나 있고, 길은 좁거나, 나무가 무성해 어두워 이곳이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나가곤 하였다. 갑자기 나타난 급경사에 이곳으로 사람이 다녔을까 생각도 해 보면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꿩의 날개짓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닿은 곳이 해변도로를 만났다. 도로의 중앙에 이정표가 등대방향과 저동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행남등대로 향했다. 넓다란 길을 한참 가다 보니 하얀색 건물과 등대가 보였다. 울릉도의 몇 개의 등대 중에 행남등대만이 유인등대이다. 한참 공사중이라 등대에 접근을 할 수 없다고 통제표시가 되어 있다. 주위만 둘러보고 등대 아래 작은 바위에 서서 저동항과 죽도만을 보고 돌아서야 했다. 이번에는 오던 길을 가지 않고 해안길을 걸었다. 발아래 기암괘석에는 흰거품을 내며 밀려드는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있고, 바람은 더 거칠게 불어왔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또 다시 섬개나무와 섬댕강나무 자생지 아래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 보았다. 이곳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5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구역이다. 섬개야광나무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이며 높이가 1.5m정도 자란다. 섬댕강나무는 인동과의 낙엽관목이며 1m정도 자라고 줄기에 6줄의 홈이 파지며 털이 없다.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는 도동항 좌측 능선부 좌우 급한 절벽에서 자라고 있어 식생이 잘 보호되고 있다. 이 능선부에는 향나무가 군데군데 보이고 바위틈에는 울릉도 특산종인 섬기린초와 울릉장구채가 자라고 있다. 절벽 밑에서는 우산고로쇠, 섬벚나무, 섬자리공, 섬시호 및 섬바디 등의 울릉도 특산종이 여기저기 퍼져 있다.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및 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를 비롯하여 낙엽성 특산수종 등의 큰나무들이 우거져서 굴러내리는 돌덩어리를 저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특산식물 중에서 섬개야광나무 몇 그루와 섬댕강나무는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어 특별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한다.
능선부 아래 해변도로를 따라 도동항으로 가다보면 울릉도에서 가장 웅장한 기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전 8시00분이 되어서 숙소로 도착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9시부터 울릉도를 한 바퀴를 도는 관광이 시작되었다. 유람선은 도동항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흑비둘기자생지도 보이고 퉁구미 향나무자생지도 보였다. 이곳은 모두 어제 왔다간 곳이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꼭 보아야할 곳은 대풍감의 향나무자생지이다. 그 위치를 울릉군청에 문의하였드니 걸어서 가기에는 매우 위험하다면서 유람선을 이용하여야 그곳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한참을 가다보니 선장이 저곳이 대풍감의 향나무자생지라고 하였다. 대품감의 향나무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이곳에는 본래 많은 향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무를 함부로 베어가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대풍감의 향나무는 바람이 강한 해안 절벽에 자라고 있기 때문에 키가 크게 자라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나무들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근처에 자라고 있다. 선장의 설명을 들어가면서 유람선은 계속 도동항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각종 기암괴석의 주위를 돌면서 관광을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바다 여행은 끝이 났으니 다시 뭍의 문화재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먼저 갈 곳은 울릉남서동고분군이다. 어제 함께 한 택시를 이용하여 서면에 있는 남서리 마을에 도착하였다. 택시기가가 어렸을 때 이곳에 한번 와 보았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주민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위치를 알려 주었다. 때마침 가는 길에 울릉도 호박엿공장이 있어 이곳의 호박엿 공정과정을 보자고 하니 그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공장안으로 들어가 공장 관계자로부터 공정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호박엿을 잔득 주었다. 하나씩 입에 물고 고분군으로 향했다. 길을 포장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차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누군가 이곳이 고분이 있는 곳이라고 작게 표시를 해 두었다. 경사진 길에 올라서니 넓은 고분군이 나타났다. 철책을 해 놓은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거의 완전한 형태의 것이 13기의 고분이 있다고 하였는데 9기의 고분만 확인하였고 그 나머니는 무너지고 숲이 우거진 곳에 있어 확인이 어려웠다. 이 고분군은 경북기념물 제72호로 보호 관리되고 있다. 고분 속으로 들어가 앉아도 보고, 길이를 알기 위해 엎드려도 보았다. 가장 아래에서 가장 위에 있는 고분까지의 거리는 약 150m 정도 되었다. 이 고분군은 울릉도에서 가장 많이 밀집분포하고 있는 고분군 유적의 하나로서, 무덤은 지형의 제약을 받아 산록경사면에 괴석으로써 위가 편평하게 축대 또는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시체를 안치하는 돌덧널(석곽)을 만들고, 그 위에 또 다시 돌로 봉분을 만든 이른바 석총이다. 특히 돌덧널 입구의 앞이 수직벽으로 되어 마치 신전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울릉도 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몇 기는 입구가 들여다 보이는 가 하면 몇 기는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모두 확인하고 또 다시 현포동고분군으로 향했다.
이 고분군은 지난해에 왔을 때 이미 확인하고 무덤속으로 기어서 들어가 보기도 하였던 곳이다. 현포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입구에 바다로 향해서 있는 것으며 그 형태가 남서동고분군과 유사하다. 이 고분군은 완만한 경사면에 40여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무덤의 형태는 기단을 만들고 가운데 직사각형의 돌방(석실)을 만들어, 시체를 넣고 그 위에 돌을 이용하여 봉분을 만든 이른바 석총으로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포동고분군은 경북기념물 제73호로 지정 보호 관리되고 있다. 모두 둘러보고 바로 나리분지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경북민속자료 제55호로 지정된 울릉나리동너와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19세기 말)에 볼 수 있었던 울릉도의 재래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 4칸 규모의 一자 평면집으로, 큰방·중간방·갓방이 전부 귀틀구조이다. 큰방과 중간방은 부엌에서 불을 떼며, 갓방은 집 외부에 돌린 나무판자로 우대기를 설치하여 별도의 아궁이를 만들었다. 지붕은 너와를 이었으며 그 위에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많은 돌을 얻어 놓았다. 집 주위에는 전부 나무판자로 우대기를 돌리고 앞 부분에는 폭을 넓게 만든 대나무 담이 있다.
길건너에는 경북민속자료 제56호인 울릉나리동투막집이 있다. 이 투막집도 개척 당시(1882년)에 볼 수 있었던 울릉도 재래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투막집이다. 1945년에 지은 집으로 원래는 3칸이었으나 한 칸을 더 달아 현재 4칸의 규모를 보인다. 지붕은 억새로 이었으며 큰방과 가운데방 벽은 귀틀로 되어 있다. 부엌에는 별도의 벽을 두지 않고 옥수수대를 세워 두른 우대기로 가렸다. 부엌의 부뚜막은 아궁이에서 내굴로 되어 있으며, 부엌 바닥은 죽담보다 낮아 계단을 놓아 오르내리게 하였다. 방 주위의 담은 앞쪽이 넓어서 활동하기 편하게 되어 있다. 주위에는 헛간과 측간이 가축을 길렀던 축사도 있다.
이곳에서 약 100m정도의 위치에 있는 경북문화재자료 제182호 울릉나리동투막집이 있다. 이 집은 1940년도에 지은 것이다. 3칸 규모의 一자형 집으로 귀틀로 벽을 짠 머릿방과 큰방, 수숫대로 만든 부엌이 각각 1칸씩 구성되어 있다. 통나무 사이에는 흙을 채우지 않아 바람이 잘 통하게 하였으며 부엌은 바닥을 낮게 하여 부뚜막을 설치하고 구들을 놓았다. 주위에는 측간이 있다.
이곳에서 3채의 울릉도 재래식 형태를 갖춘 집을 모두 보았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곳에 왔을 때 풍성하게 대접 받은 충청도 아줌마를 찾았다. 한참 후에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뛰어 오고 있었다. 우리를 알아차리고 지난해에 오셨던 기억을 모두 말씀하신다. 이곳에서 풍성한 대접을 받고 갔던 기억에 우리도 아줌마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가려고 붙들었으나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그렇다고 하니 그럼 저 위에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가라고 하면서 음식값은 아주머니가 낸다고 하였으나 그럴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알려 준 음식점에서 푸짐한 비빔밥을 먹고 다음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성인봉으로 들어가는 곳에 천연기념물 제52호 지정된 나리동의울릉국화,섬백리향군락을 찾아 갔다.
초행길이면서 이곳의 택시 기사도 알 수 없이 꼭꼭 숨어 있는 곳이였다. 이곳에 오기전 너와집 앞에서 울릉군청 문화재담당 공문원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이 곳의 위치와 또 다른 투막집 2곳의 위치를 알아 보고 왔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숲속 약간 구릉지에 철책으로 울타지가 쳐진곳이 군락지였다. 안내판을 확인하고 식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았다. 이곳의 울릉국화는 들국화의 한 종류인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9∼10월에 핀다. 섬백리향은 키가 작고 밑둥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로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떨어진다. 꽃향기가 백 리를 갈 만큼 매우 강하다 하여 백리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다시 경북민속자료 제57호 울릉나리동투막집을 찾아 나섰다. 이 깊은 산속을 뒤지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찻길도 없는 곳을 헤매다 집을 찾았다. 이 집은 1945년 전후에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4칸 크기에 큰방·머릿방·정짓방·부엌을 두었고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일부 벽 통나무 사이에 흙을 채우지 않아 틈 사이가 보이며, 통풍이 잘 되도록 꾸민 점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100여m 옆에 있는 경북문화재자료 제183호 울릉나리동투막집을 찾았다. 이 집은 원래 있던 것을 헐고, 그 목재를 이용하여 198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투막집이라고도 불리는 귀틀집은 통나무를 井자형으로 귀를 맞추어 쌓아 올려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너와·굴피·화피 따위로 지붕을 이은 집을 가리킨다. 이 집은 4칸 규모의 一자형 집으로, 부엌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배치하였다. 부엌 바닥은 축담보다 낮게 하여 계단을 놓고 오르내리게 하였다. 방벽과 외벽 사이의 공간인 처마 밑 축담은 주위를 억새풀로 우데기를 둘러쳤으며, 앞쪽을 더 넓게 하여 활동하기 편하도록 하였다. 지붕과 외벽은 억새를 이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울릉도의 전통가옥을 모두 확인하였다. 울릉도에 와서 너와집이라든가 투막집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냥 부르기 좋은 말로 옛날집을 찾아 왔는데 어디에 있느냐고 하면 모두 알려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남은 것은 성인봉의 원시림을 찾아갈 차례이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고 있었다. 열심히 걸어가다 보니 경사진 곳에는 나무계단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작업중이고, 등산로 주위에는 우거진 고목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헐떡이는 숨을 내뱉고는 또 다시 오르면 야생화가 길을 멈추게 하곤 하였다. 한참 오르다 보니 주위가 원시림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참 동안 주위의 모습과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였다. 이곳 성인봉의 원시림은 울릉도 성인봉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형성된 숲으로 너도밤나무 숲이 있고 섬조릿대가 나며 그 사이에 솔송나무, 섬단풍나무 등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들로 숲이 이루어져 있으며, 그 밖에 섬노루귀, 섬말나리, 섬바디 등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들도 자란다. 우릉도의 곳곳에 많이 자라는 부지깽이나물과 산마늘 그리고 고비가 즐비하게 자라고 잇었다. 아내는 열심히 산마늘잎과 고비순을 채취하느라 많이 뒤떨여져 잇었다. 야호 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알면서 성인봉을 향했다. 정상 아래에는 목을 축여주는 샘터가 있어 한 잔을 마시니 기운이 살아났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내가 도착하여 시원한 물 한모금을 마셨다. 또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해는 먼 수평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성인봉 정상에 올라 울릉도 전체를 조망하고는 도동항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원시림으로 우거진 성인봉 주위를 확인하고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니 해는 이미 수령선에 지고 말았는지 어둠이 오기 시작하였다. 팔각정에 도착하여 시원한 울릉도 동동주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다시 내려가니 도동항이 눈앞에 보였다. 이제는 많이 어두어졌다. 조심조심 또 조심하면서 도동항 숙소에 도착하였다.
온 몸에 흐르는 땀을 씻고는 저녘밥을 짖고, 채취한 산마늘잎과 고비를 삶아 이를 반찬으로 하여 맛있는 저녘식사를 마쳤다. 도동항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들어 오면서 2만원 상당의 회를 사와서 쇠주 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모두 씻어 내렸다.